
죽음을 앞둔 사람이 오히려 더 잘 살고 있다면, 그게 아이러니가 아닐까요?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공포 소설인 줄 알고 책을 덮을 뻔했습니다. 그런데 읽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이 제목이 소설 전체를 가장 정확하게 압축한 한 문장이라는 걸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제목 의미
췌장을 먹는다는 표현은 일본에서 내려오는 민간 관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아픈 장기를 먹으면 낫는다는 의미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그 의미가 한 층 더 깊어집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상대를 너무나 닮고 싶을 때, 그 사람의 췌장까지 먹어버리고 싶다는 표현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제목 하나가 두 주인공의 관계 전체를 얼마나 정밀하게 담고 있는지 새삼 놀랐습니다.
서사 구조(narrative structure)를 살펴보면, 이 소설은 두 주인공이 철저히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같은 하루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서사 구조란 이야기가 사건과 감정을 어떤 순서와 관점으로 배열하는지를 말합니다.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이 살아있던 과거의 순간들에 집중하고,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과 함께할 내일을 꿈꿉니다. 같은 하루를 보내면서도 두 사람의 시선은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셈입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라는 말은 여자 주인공의 모든 것을 닮고 싶어하고 사실 사랑하는 남자주인공의 마음이 담겨있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연애하게 되면 서로 닮아가게 되는데요. 저도 연애를 하면서 상대와 비슷하게 되는 경향이 있었어요.
하지만 내가 추구하던 방향과 다른 사람과 연애를 했을 경우, 그 또한 상대를 닮아가는 제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아쉬웠습니다. 저는 더 성장하고 싶고 발전하고 싶은데 상대방은 현실의 안주와 편안함을 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소중함, 일본 여행 욕구가 밀려오는 책
시한부(terminal illness) 서사를 다루는 소설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일상의 재발견입니다. 시한부 서사란 죽음이 예정된 인물이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말합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읽어보니, 이 소설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죽음을 앞둔 여자 주인공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하루를 어떻게 누릴 것인가'를 묻고 있거든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목표 지향적으로 살아온 편입니다. 항상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달려왔고, 쉬는 시간조차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들과 대화하는 시간도 줄이고, 더 공부하고 더 집중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보다 더 많이 놀았던 친구가 더 좋은 결과를 얻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입시 때가 특히 그랬는데, 그 박탈감이 꽤 오래 남았습니다.
이 소설의 장면 중에서 두 주인공이 학교를 마치고 서점에 들르거나 식당에서 장어 덮밥을 먹는 평범한 일상이 계속 등장합니다. 제가 읽으면서 일본에 가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을 정도로, 그 장면들이 주는 온도가 따뜻했습니다.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한 감성이 배경에 녹아있기도 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두 사람이 그 순간을 '그냥' 살아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증명하려 하지 않고, 그냥 지금 여기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하루들.
번아웃, 멈추는 법을 배우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저는 한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지금 저에게, 그 사람의 췌장까지 먹고 싶을 만큼 닮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아직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지만,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자신이 되기 위해 지금의 하루를 조금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결국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어떤 사람과 그 하루를 나눌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직 이 소설을 읽지 않으셨다면,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 멈춰 서는 계기로 삼아보시길 권합니다.
저도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기가 뚫린 것처럼 새로운 일들을 시작했습니다. 서핑을 배우고 블로그를 시작했으며, 돈도 저를 위해 계획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깨달은 건, 쉬어가는 것이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 달릴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7일 동안 쉬지 않고 끝내는 것보다, 조금 여유 있게 10일에 걸쳐 끝내는 것이 오히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ve Behavioral Therapy)에서는 목표에만 집중하는 삶이 번아웃(burnout)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번아웃이란 지속적인 과부하 상태로 인해 감정적, 신체적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번아웃을 직업적 현상으로 공식 분류하였으며, 이는 단순한 피로가 아닌 만성적 스트레스 관리 실패로 정의됩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여러분도 번아웃이 오기 전에 휴식을 취하고 일상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상대를 만나 매일 매일이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