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너를 생각해 책 후기 (줄거리, 시대 배경, 인상 깊은 구절)

오늘 리뷰할 책은 후지마루의 소설 '가끔 너를 생각해'입니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멍하니 있었던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후지마루의 소설 '가끔 너를 생각해'를 읽고 나서 딱 그런 상태였습니다. 마녀가 나오는 판타지라 가볍게 집어 들었는데, 다 읽고 나니 일상을 돌아보게 되는 묵직한 여운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 꽤 흥미로운 소설이었습니다.
은행 이벤트 당첨으로 이 책을 선물받게 되어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요. 그럼 본격적을 리뷰를 시작하겠습니다. (스포주의)
가끔 너를 생각해 줄거리
줄거리는 일본 헤이세이 시대에 마지막으로 남은 마녀 시즈쿠가 여섯가지 마도구를 이용하여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내용입니다. 시즈쿠는 불황 속에 자라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세대인 사토리 세대로 냉소적인 20대 대학생인데요. 그래서 이 시대엔 마녀로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느 날 10년 전 갑자기 사라진 소타가 찾아와 시즈쿠가 마도구를 사용하여 사람을 돕는데 힘써주고 격려해 줍니다. 처음에는 냉철하고 먼저 친절을 베풀고 나서기 싫어하는 시즈쿠도 소타와 함께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점점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게 자신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시즈쿠는 후에 소타의 정체를 알게 되고 이별하게 되어 몹시 안타까워하고 그리워 합니다. 언젠가 곁에 올 것이라 믿으며 희미한 기억의 선을 놓치 않습니다. 그리고 50년 후 이 둘은 다시 재회하게 됩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가 되지만 제 생각으로는 둘이 재회 할때 아마 소타는 시즈쿠를 기억하지 못 할 것입니다. 소타는 이미 마력을 읽고 고양이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직 미즈쿠가 완전히 마녀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어 소타에게 기억을 돌려줄 수 있는 능력이 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후에 손녀인 고즈에가 마도구를 사용해가면서 기억이 돌아오고 둘은 짧지만 달콤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습니다.
사토리 세대 시대적 배경이 주는 의미
이 소설의 핵심 설정을 이해하려면 주인공 시즈쿠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봐야 합니다. 시즈쿠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입니다. 사토리 세대란 일본의 장기 불황 속에서 자란 세대를 가리키는 말로, "이미 체념한 세대"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욕망을 최소화하고 현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특징인데, 실제로 일본 내각부 조사에 따르면 2010년대 이후 일본 20대의 소비 의욕과 사회 참여 의식이 이전 세대 대비 현저히 낮아졌다고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일본 내각부)
시즈쿠가 마녀임에도 마도구를 사용하기를 꺼린다는 설정이 처음에는 좀 이상하게 느껴졌는데, 읽다 보니 이게 정확히 사토리 세대의 심리를 반영한 장치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도움을 준다는 행위 자체를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일로 여기는 태도, 저도 솔직히 공감이 됐습니다. 직장 생활에서도 연차를 양보하거나 일을 더 해주면 괜히 제가 손해본것 같아서 억울하곤 합니다. 하지만 남을 행복하게 해주면 스스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점을 책을 통해 다시 발견했습니다.
소설에서 시즈쿠가 사용하는 마도구는 총 여섯 가지입니다. 각각의 마도구는 단순히 편의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된 감정선을 이어주는 매개로 작동합니다.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히토미 에피소드였는데요. 히토미는 입양된 가정에서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다 극심한 내적 스트레스를 받는 인물입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지만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는 이 캐릭터는, 자기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일본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줍니다. 실제로 일본의 자살 예방 및 정신건강 관련 연구에 따르면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심리(迷惑かけたくない)"가 오히려 고립을 심화시키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습니다(출처: 일본 후생노동성).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고립과 단절의 서사를 보면서, 이게 비단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다 혼자 앓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솔직히 저도 그런 적이 많았으니까요.
시즈쿠가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핵심 변화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처음: 타인을 돕는 행위를 비용 대비 효율이 낮은 소모적 행동으로 인식
- 중반: 소타와 함께 마도구를 사용하며 타인의 행복이 자신의 만족감으로 연결됨을 경험
- 후반: 돕는 행위가 자존감 회복(self-esteem recovery)의 촉매가 됨을 깨달음
인상 깊은 구절 '마음은 마법을 능가한다'
소설이 끝나는 지점에서 가장 크게 남는 문장이 있습니다. "마음은 마법을 능가한다." 처음 읽었을 때는 좀 진부하다고 느꼈습니다. 비슷한 말을 자기계발서에서 너무 많이 봤으니까요. 그런데 제 경험을 돌이켜 보면 이게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저는 한때 운명론적 사고에 상당히 경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운명론적 사고(fatalism)란 모든 결과가 이미 정해진 외부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 인지 패턴을 말합니다. 이 패턴이 강해지면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 낮아집니다. 자기효능감이란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가 정립한 개념으로, 자신이 특정 상황에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오늘 일이 잘 안 풀리면 "나는 이런 운명인가" 하며 소극적으로 움츠러들었고, 그게 다시 낮은 성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그러다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인턴 중이라 연차 쓰기가 눈치 보이는 상황이었는데, 가고 싶었던 기업의 면접이 딱 그 시기에 잡혔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봤는데, 그냥 될 대로 되라며 포기했다면 절대 못 갔을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원하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방법을 찾게 됐고, 결국 연차를 쓸 수 있었고, 합격도 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운이라는 건 결국 마음의 방향을 따라온다는 걸 믿게 됐습니다.
소설 속 시즈쿠도 비슷한 과정을 거칩니다. 자존감이 낮고 냉소적이었던 그가 누군가를 돕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자기 자신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친사회적 행동(prosocial behavior)의 효과와도 일치합니다. 친사회적 행동이란 타인의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행하는 행동을 뜻하며, 이를 실천할수록 행위자 본인의 주관적 행복감도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존재합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소타의 정체 설정이 이야기의 감정선을 약화시키는 면이 있었습니다. 시즈쿠가 소타에 대해 품는 감정이 상당히 진하게 묘사되는데, 그 대상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감정 이입이 조금 흔들렸습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독서 경험 상의 반응이고, 다르게 받아들이는 분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별 이후 50년 만에 재회한다는 구조는 충분히 울림이 있었습니다.
소설 전반에서 느껴지는 일본 생활의 아기자기한 묘사들도 꽤 좋았습니다. 골목 풍경이나 일상적인 대화의 질감 같은 것들이 글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서, 책을 읽는 내내 일본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장소가 이야기의 정서를 얼마나 풍부하게 만드는지 실감한 소설이었습니다.
가볍게 읽기 시작했지만 끝에 가서 뭔가 남는 소설이 있습니다. '가끔 너를 생각해'가 저에게 그런 책이었습니다. 남을 돕는 행위가 결국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메시지는, 요즘처럼 이기적이 되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특히 더 와닿습니다. 판타지 소설이 읽고 싶은데 동시에 뭔가 생각할 거리도 원한다면, 이 책이 좋은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