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추천으로 이 책을 읽은 건 2023년이었습니다. 당시 2차전지 주가가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고, 저도 괜찮겠다 싶어 엘앤에프와 이차전지 ETF에 일부 자금을 넣었습니다. 결과는 2년 가까이 물려 있다가 10% 손실을 확정하고 매도한 것이었고, 팔고 나서 주가가 반등했습니다. 이 리뷰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책의 주장을 하나씩 검증해보는 글입니다.
K 배터리 낙관론, 근거는 있었다
책의 핵심 주장은 명쾌합니다. 전기차의 심장은 배터리이고, 그 배터리 기술에서 한국이 세계 최고라는 것입니다. 저자가 특히 강조하는 건 에너지밀도입니다. 에너지밀도란 단위 무게당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을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같은 무게의 배터리로 얼마나 멀리 달릴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수치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배터리의 주력인 NCMA, NCM9 계열은 305Wh/kg 수준의 에너지밀도를 갖는 반면, 중국이 주력으로 삼는 LFP 배터리는 165Wh/kg에 불과합니다. 수치만 보면 한국이 약 85% 앞서 있습니다. 여기서 LFP란 리튬인산철을 뜻하는 배터리 양극재 방식으로, 열 안정성이 높아 화재에 강하지만 에너지밀도가 낮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저자가 또 하나 강조하는 건 하이니켈 양극재 기술입니다. 하이니켈이란 배터리 양극재에서 값비싼 코발트 비중을 줄이고 니켈 함량을 90% 수준까지 높인 기술인데, 이렇게 하면 원가가 낮아지면서 에너지밀도는 오히려 올라가는 효과가 납니다. 문제는 이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회사가 전 세계에 에코프로비엠, LG화학, 엘앤에프, 포스코케미칼, 이렇게 네 곳뿐이고 모두 한국 기업이라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저도 책을 읽으면서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고려청자의 비색을 구현하듯 수만 번의 실패를 거쳐 쌓인 기술이라는 비유도 납득이 됐고요.
IEA(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은 2021년 297GWh에서 2025년 1,400GWh로 연평균 28%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출처: IEA). 시장이 이 속도로 크고 한국이 기술 주도권을 쥐고 있다면, 책의 낙관론이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닌 셈입니다.
책이 말하지 않은 것들, 전기차 캐즘 제가 직접 겪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술 우위가 있으면 시장도 이긴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의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책을 읽고 투자했다가 캐즘(Chasm)을 정면으로 맞았기 때문입니다. 캐즘이란 새로운 기술이 초기 수용층을 넘어 대중 시장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겪는 일시적 수요 정체 구간을 의미합니다. 전기차 보급률이 예상보다 더디게 오르면서 배터리 기업들의 수주 이행도 늦어졌고, 주가는 2023년 고점 대비 절반 이하로 내려온 종목도 수두룩했습니다.
책이 출간된 건 2023년 2월이고 저자는 3~4년은 묵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4년이 가기 전에 현금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그게 현실로 닥쳤고, 결국 손실을 안고 팔았습니다. 책에서는 이 리스크를 충분히 경고하지 않습니다.
저자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느낀 주장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3원계 배터리(NCM/NCA)가 LFP 대비 에너지밀도 우위로 시장을 제압할 것이라는 주장. 하지만 가격이 기술을 이기는 사례는 산업 역사에서 반복되어 왔습니다. 실제로 테슬라가 모델3, 모델Y의 스탠다드 버전에 LFP를 채택하면서 LFP의 시장 점유율은 꾸준히 올라갔습니다.
-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내재화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주장. 화학 기술과 기계 기술의 벽이 높다는 논리는 타당하지만, 폭스바겐과 테슬라의 자체 배터리 개발 계획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 논리를 뒷받침하기보다는 단지 시간이 걸리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 에코프로비엠의 기술 격차. 2024년 7월 기준 에코프로비엠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약 7% 수준으로, 독보적 1위라고 부르기엔 절대적 수치가 작습니다.
폼팩터(Form Factor) 측면에서도 검토할 지점이 있습니다. 폼팩터란 배터리의 물리적 형태를 뜻하는 용어로, 원통형·각형·파우치형 세 가지로 나뉩니다. 저자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만 보유한 파우치형이 무게와 공간 효율에서 압도적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테슬라는 여전히 원통형을 고집하고 있고, 중국 CATL의 각형 배터리도 특정 차종에서는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술 우위가 시장 우위로 바로 이어지는 공식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걸, 저는 이 두 해 사이에 배웠습니다.
한국거래소(KRX)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국 증시에서 이차전지 관련 섹터는 연초 대비 최대 130% 이상 상승한 뒤 같은 해 하반기부터 급격한 조정을 받았습니다(출처: 한국거래소). 미래를 선반영한 주가가 현실 속도를 앞질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몸으로 경험한 셈입니다.
그래서 이 책, 어떻게 읽어야 하나, 양극재 이해하기
결국 이 책은 산업 입문서로서는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 양극재, 음극재, 전해액, 분리막 등 이차전지의 4대 소재 구조를 설명하고 그중 양극재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 가능한 논리로 풀어낸 것은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특히 하이니켈 기술의 진입장벽, IRA(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가 중국 배터리를 미국 시장에서 배제하는 구조, GM의 얼티엄 플랫폼에서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가 담당하는 역할 같은 내용은 산업 구조를 이해하는 데 실질적으로 유용했습니다.
다만 저자가 배터리 기업 IR 담당자라는 사실은 독자가 늘 머릿속에 두어야 할 맥락입니다. 아무리 진심을 담아 썼더라도 자신이 속한 산업을 부정적으로 쓸 사람은 없으니까요. 저도 처음엔 이 부분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투자를 해보고 나니 비판적 독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습니다.
K 배터리 산업이 유망하다는 큰 방향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단기 자금이 묶일 수 있는 상황이라면, 개별 종목보다는 지수 추종 ETF로 리스크를 분산하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이 책은 투자 결정서가 아니라 산업 지도를 그리는 첫 번째 참고서로 활용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은 반드시 본인의 상황과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여 결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