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직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그냥 차 끌고 어디론가 무작정 달려본 경험있으신가요? 저는 첫 애인과 헤어지고 나서 며칠간 몸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은 상실감에 시달렸었습니다. 그 감각이 얼마나 생생하게 남아 있는지, 『기사단장 죽이기 1』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이혼 통보를 받고 차를 몰며 방황하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멈칫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워낙 유명한 작가라 기대를 잔뜩 품고 펼쳤는데, 솔직히 말하면 읽는 내내 "이 소설이 결국 뭘 말하려는 걸까"를 놓지 못했습니다.

『기사단장 죽이기』의 서사구조, 기대와 실제는 달랐습니다
일반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서양 문화와 일본 정서가 매끄럽게 뒤섞인 독특한 서사구조를 갖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서사구조란 이야기가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독자에게 전달되는지를 결정하는 뼈대로, 소설의 몰입감과 주제 전달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요소입니다. 이 작품도 그 평판에 걸맞게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 일본화, 나치 치하 빈의 역사적 사건이 한 그림 안에 겹쳐지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돈 조반니』는 모차르트가 1787년 초연한 오페라로, 주인공 돈 조반니가 귀족 여성 돈나 안나를 겁탈하려다 그녀의 아버지인 기사단장을 결투 끝에 살해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작품 속 화가가 천장 위 비밀 공간에서 발견하는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는 바로 이 장면을 일본화 기법으로 재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일본화란 서양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 내부에서 필요에 의해 형성된 회화 양식으로, 엄밀한 단일 기법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합의에 가깝습니다. 서양의 유화와 달리 암묵적으로 일본적 감수성과 재료를 공유하는 개념입니다. 이 점은 저도 읽으면서 처음 알았고, 제 경험상 이런 맥락을 모른 채 그림 장면을 읽으면 이야기의 긴장감을 절반은 놓치게 됩니다.
엄마가 이 소설을 추천하면서 관동대지진을 배경으로 한다고 했는데, 읽을수록 그 내용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습니다. 관동대지진은 1923년 일본 도쿄와 요코하마 일대를 강타한 규모 7.9의 대지진으로, 당시 조선인 학살이라는 역사적 비극과 함께 언급되는 사건입니다. 1권에서는 극히 짧게 스쳐 지나가는 수준이었고, 오히려 멘시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서사가 중심을 차지합니다. 기대했던 역사 소설의 결을 찾던 저로서는 다소 의아했습니다.
1권에서 서사의 전환을 이끄는 핵심 장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의 발견: 화가 아마다 도모히코의 비밀 화실에서 나온 일본화로, 주인공의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시발점
- 멘시키(免色)의 등장: '색을 면한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수수께끼의 인물로, 이웃 저택에서 망원경으로 소녀를 관찰하는 인물
- 석실과 방울소리: 집 뒷산에서 발굴된 돌방에서 밤마다 들려오는 방울소리로, 이데아의 형체화를 예고하는 장치
이데아의 형체화, 그리고 공허함을 채우는 방식
이 소설에서 가장 독특한 장치는 기사단장이 실제 눈앞에 나타난다는 설정입니다. 기사단장은 스스로를 영혼이 아닌 이데아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이데아(Idea)란 플라톤 철학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현실 세계의 사물이나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순수하고 완전한 형태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눈에 보이는 것들의 '원형' 같은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철학적 개념을 소설 속에서 형체화(形體化), 즉 관념이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어 인간 앞에 현현하는 방식으로 활용합니다. 형체화란 추상적 존재가 원하는 사람 앞에서만 물리적 형태를 취하는 것을 뜻하며, 기사단장은 이 논리로 화가 눈앞에만 모습을 드러냅니다.
제가 대학생 때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는 이 부분이 그냥 판타지적 장치로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연애를 오래 해보고, 헤어지는 경험도 반복하고 나서 다시 읽으니 다르게 보였습니다. 주인공은 이혼 이후 공허함을 그림으로, 그리고 기사단장이라는 관념적 존재와의 대화로 채워 나갑니다. 이건 사실 누구에게나 익숙한 패턴입니다. 저도 헤어지고 나면 일에 더 몰두하거나 무작정 여행을 떠났습니다. 뇌는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미국 UCLA 심리학과 연구팀에 따르면 사회적 거절이 활성화하는 뇌 부위가 신체적 통증을 처리하는 영역과 사실상 겹친다고 합니다(출처: UCLA 심리학과). 그러니 주인공이 집착할 대상을 찾아나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멘시키라는 인물도 처음에는 단순한 부유한 이웃으로 보이지만, 읽을수록 그의 행동 동기가 집요하게 쌓입니다. 그는 오래전 연인이 낳은 소녀가 자신의 혈육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하나만으로 저택을 구입하고, 망원경으로 그 아이를 관찰합니다. 이 설정은 한편으로는 소름 돋는 집착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동시에 확인할 수 없는 가능성을 붙들고 사는 인간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저는 흔들림 없는 진실보다 흔들릴 여지가 있는 가능성을 선택하겠습니다"라는 멘시키의 말은 1권에서 제가 줄을 그은 유일한 문장입니다.
기사단장 죽이기, 주제와 작가 의도
일반적으로 하루키 소설은 주제가 명확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작품은 1권을 덮는 순간까지 주제가 또렷하게 잡히지 않습니다. 메타픽션적 서술, 즉 소설이 스스로 자신의 허구성을 의식하면서 전개되는 방식이 독자를 이야기 밖으로 밀어내는 측면이 있습니다. 메타픽션(Metafiction)이란 작품이 자신이 허구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기법으로, 독자와 서사 사이에 묘한 거리감을 만들어냅니다. 이 기법이 이 소설에서는 신비감을 만드는 동시에, 저처럼 "그래서 뭘 말하는 거야"를 끝까지 묻게 만드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2024년 현재까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한 데 대해 문학계 안팎에서 꾸준히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데, 스웨덴 한림원의 선정 기준과 관련한 논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출처: 스웨덴 한림원).
1권을 마무리하고 나서 솔직한 감상은, 재미보다는 "오묘함"에 가까웠습니다. 강렬하게 끌리지는 않았지만 2권이 궁금해지는 이상한 흡입력이 있었습니다. 이건 제가 직접 읽어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던 감각이었습니다.
2권 리뷰에서는 석실과 방울소리의 정체, 그리고 기사단장이 주인공에게 요구하는 것이 결국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돌아오겠습니다. 1권만으로는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입니다. 만약 하루키를 처음 읽는다면, 1권을 덮으면서 느끼는 물음표들을 메모해 두시길 권합니다. 그 물음표가 2권을 펼치는 이유가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