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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2 서평 (줄거리, 이데아, 주관성)

boosuk1 2026. 6. 4. 21:08

1,200쪽을 다 읽고 나서도 답이 없었습니다. (스포주의) 기사단장은 대체 무엇인지, 멘시키와 마리에는 결국 어떻게 된 건지.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많거든요.  이렇게 두꺼운 소설을 끝까지 붙들었는데 결말에서도 모호함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처음엔 당혹스러웠습니다.

줄거리, 이별 통보 이후 시작되는 표류의 시간

기사단장 죽이기 1 리뷰에서 말했다 시피 소설은 아내의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에서 출발합니다. 주인공이 놀란 건 이별 자체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일은 착실히 진전되고 있었다"는 구절이 처음 읽었을 때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기 때문입니다. 연애가 끝날 때를 돌이켜보면, 크게 싸운 날보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던 조용한 시간들이 진짜 위기였던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주인공은 집을 나와 목적지 없이 차를 몰다 친구의 도움으로 산속 아틀리에에 머물게 됩니다. 이 공간이 심리적으로 흥미로운 이유는, 화가 아마다 도모히코(友人의 아버지)가 남긴 흔적들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다락방 깊숙이 숨겨둔 그림 한 점이 이야기의 방향을 바꿉니다. 제목과 같은 이름의 그림, 바로 기사단장 죽이기입니다.

이 그림이 단순한 소품이 아닌 이유는 당시 오스트리아 나치 점령기라는 역사적 배경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나치즘(Nazism)이란 독일 국가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로, 1930년대 후반 오스트리아 합병(안슐루스)을 계기로 그 지배력이 확대되었습니다. 작가는 이 시대를 살아낸 한 화가가 외부에 드러낼 수 없었던 내면의 비극을 그림 속에 암호처럼 숨겨두었다고 설정한 것입니다.

기사단장이라는 이데아, 그리고 관념을 죽인다는 것

소설에서 가장 독특한 설정은 그림 속 인물인 기사단장이 실제로 주인공 앞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이데아(Idea)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이데아란 플라톤 철학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불변의 본질적 형상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머릿속에서 형태를 갖춘 관념이나 생각'이라고 보면 됩니다.

기사단장이 주인공에게 반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대로 어둠 속에 묻어두는 게 좋을 일도 무척 많다." 처음엔 이 대사가 그저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장치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소설 후반부에 가서 이 말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저도 처음엔 이 구조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마리에가 실종되고, 화자가 아마다 도모히코 요양원을 찾아가고, 기사단장을 직접 찌르는 장면이 연달아 나오는데 갑작스럽게 이상한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아서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리뷰들을 찾아보고 나서야 이 구조가 단순한 환상 서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마리에가 들어가는 지하 세계는 메타포(Metaphor)로 읽어야 합니다. 메타포란 하나의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수사적 기법으로, 여기서는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주인공이 기사단장을 칼로 찌르는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폭력이 아니라 자신을 오랫동안 지배해 온 관념, 즉 '진실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메타포입니다.

소설 전체에서 이 주제를 뒷받침하는 장치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기사단장: 주인공을 지배해온 관념의 구체적 형상화
  • 기사단장을 죽이기: 오래된 집착과 강박을 스스로 끊어내는 행위
  • 지하 세계(구멍):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내면의 공간
  • 완성하지 못한 그림들: 보이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외면해 온 시간들

취업 준비 때 떠올린 것, 객관보다 먼저인 주관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제 경험이 겹쳐 보였습니다. 취업 준비를 할 때 저는 처음부터 제가 갈 수 있는 회사를 계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객관적인 스펙과 경쟁률보다 먼저 한 것은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이 무엇인지'를 정하는 일이었습니다. 대기업에 가겠다고 먼저 믿고, 그 믿음에 맞게 행동했습니다. 

이게 단순한 긍정적 사고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소설 속 기사단장의 말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조금 다르게 읽힙니다. "객관이 주관을 능가한다는 법은 없어." 이 문장이 단순한 위로가 아닌 이유는, 실제로 믿음이 행동을 만들고 행동이 결과를 만드는 과정을 직접 겪어봤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맹목적인 믿음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현실을 외면한 주관성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릅니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의 기존 믿음을 지지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 증거를 무시하는 인지적 경향을 말합니다. 소설이 말하는 것도 무조건적인 주관이 아니라, 적어도 자신이 믿는 방향을 먼저 정한 후 행동하는 태도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심리학계에서도 자기 자신과의 내면 대화가 삶의 방향 설정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지속적으로 연구되어 왔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하루키는 이 과정을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으로 소설 안에 풀어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이 결국 1,200쪽이 필요했던 이유도 거기 있다고 봅니다.

문학 비평의 관점에서도 하루키의 이 작품은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서사의 특징을 뚜렷하게 드러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절대적 진실이나 단일한 의미를 거부하고, 다층적이고 모호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사조입니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독자마다 다른 결말을 상상하게 만드는 구조 자체가 그 증거이며, 이는 단순한 미완성이 아니라 의도된 열림입니다(출처: 문학동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모든 게 흐릿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 흐릿함이 이 소설이 주는 정직한 결론인 것 같습니다. 선명하게 설명되지 않는 것들을 그냥 두면서도, 내가 믿는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는 것. 그게 어쩌면 이 소설이 조용히 건네는 가장 진지한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상실의 시대로 하루키를 처음 읽었다면, 기사단장 죽이기는 그 다음 단계의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읽고 나서 바로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으니, 일단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blog.naver.com/eehhjj95/223307505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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