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백지 앞에서 서평 (외로움, 욕망의 주체, 자기존중)

boosuk1 2026. 6. 22. 20:21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에세이 교보문고 베스트셀러를 가져왔습니다. 바로 최은영 작가님이 쓴 '백지 앞에서'라는 산문입니다. 2013년 '작가세계'라는 작품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작가 활동을 본격 하셨는데요. 이번에는 소설이 아닌 수필이라는 점에서 작가님과 순수하게 마주하며 대화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같이 있으면 괜찮아질까요? 저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작가님 산문집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외로움이란 감정은 상황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붙어있는 것일 수 있다는 걸, 이 책이 조용하게 말해주더라고요.

외로움은 혼자라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혼자 사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 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내가 혼자니까 외로운 거야." 저도 그랬습니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집에 돌아오면, 텅 빈 공간이 유독 크게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는데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어느 순간 혼자인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백지 앞에서』는 이 감정을 정확하게 짚어줍니다. 혼자여서 외로운 게 아니고, 함께여서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요. 외로움이란 감정은 어떤 물리적 조건과 상관없이 우리 곁에 붙어 있다는 겁니다.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친구들과 약속 잡고 나면 즐거운데, 돌아오면 일단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 생각을 정리해야 숨이 쉬어집니다. 그런데 그 고요한 시간 안에서도 어느 순간 외로움이 불쑥 올라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이럴까' 자책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게 이상한 감정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 감정을 실존적 고독(existential loneliness)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실존적 고독이란 인간이 근본적으로 타인과 완전히 연결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감정으로, 혼자 있든 함께 있든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 상태를 말합니다. 외로움을 느낄 때 그 감정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그냥 "지금 나 이런 감정이구나" 하고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더 건강한 방식일 수 있습니다.

책에서 말한 외로움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되는 접근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외로움을 결함이나 실패의 신호가 아닌, 보편적 감정으로 인식하기
  • 혼자 있는 시간을 불안하게 채우려 하지 않고, 그 상태 자체를 허용하기
  • 사람이 그립다는 감정과 지금 당장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충동을 분리해서 생각하기

욕망의 주체로 살아가는 연습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약속 날짜를 잡을 때 솔직히 다음 달이 더 편한데, 상대가 이번 달을 원할까봐 먼저 이번 달 일정을 어렵게 조율한 경험 말입니다. 저는 그런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렇게 억지로 맞추고 나면 정작 만남 자체가 피곤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백지 앞에서』에서 최은영 작가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욕망의 주체(agent of desire)가 되기보다 욕망의 대상(object of desire)으로 존재하는 데 더 익숙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욕망의 주체란 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추구하는 능동적인 상태를 말하고, 욕망의 대상이란 타인의 기대와 시선에 맞추어 자신을 규정하는 수동적인 상태를 가리킵니다.

제가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만, 처음에는 제 의견을 꺼내는 게 상대방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제 의견을 넣어보기 시작하니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상대가 오히려 제 의견을 존중해주고, 심지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동안 상대방이 원할 것 같은 허상을 혼자 만들어놓고, 정작 상대는 원하지도 않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맞추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자기효능감이란 자신이 어떤 상황을 스스로 선택하고 조율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것이 높을수록 관계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더 편안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제 경우에도 작은 제안 하나를 용기 있게 꺼내는 순간마다 이 감각이 조금씩 쌓이는 걸 느꼈습니다.

사회적 비교 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도 참고가 됩니다. 이 이론은 사람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측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인데, 그 기준이 '타인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했는가'가 되면 스스로의 욕망은 점점 뒤로 밀려나게 됩니다.

한국심리학회에 따르면, 자기표현 훈련이 대인관계 만족도와 자아존중감을 동시에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내 의견을 말하는 연습이 단순히 관계에서 유리해지는 기술이 아니라, 나 자신을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걸 이 연구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자기존중이 먼저입니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존중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한동안 이 질문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했습니다. 자기존중이란 뭔가 대단한 결심이나 변화가 있어야 생기는 것처럼요.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아존중감(self-esteem)은 거창한 성취보다 일상의 작은 선택들이 쌓이면서 형성됩니다. 여기서 자아존중감이란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안정적인 감각을 뜻하는데, 이것이 높은 사람일수록 타인의 부정적 반응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의견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은영 작가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취약성(vulnerability)을 언어로 드러내는 과정이 곧 스스로를 욕망의 대상에서 주체로 옮겨가는 길이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취약성이란 자신의 약점이나 상처, 불완전함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는 상태를 가리키며, 이것이 오히려 관계를 깊게 만드는 출발점이 된다고 합니다.

저는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 부분이 가장 와닿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스스로에게 얼마나 엄격했는지, 반면 타인의 감정에는 얼마나 과도하게 신경 썼는지가 보이더라고요. 상대방 의견을 존중하듯이, 제 의견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다시 실감했습니다.

자기존중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방법을 고민해보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작은 결정부터 내가 원하는 쪽으로 말해보기 (약속 날짜, 메뉴 선택 등)
  • 내 의견을 말했을 때 상대 반응을 미리 최악으로 가정하지 않기
  • 거절당하더라도 그게 나의 가치 전체를 부정하는 게 아님을 기억하기

『백지 앞에서』가 수필(memoir essay)이라는 장르로 쓰인 것도 의미 있습니다. 수필이란 작가가 허구가 아닌 실제 자신의 삶과 감정을 언어로 옮기는 형식으로, 독자는 인물이 아닌 실재하는 인간의 목소리를 직접 듣게 됩니다. 그래서 소설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외로움이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 감정을 다르게 바라보게 됩니다. 외로움은 내가 부족해서 생기는 신호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고 가는 감각이라는 걸요.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는 연습이 거창한 용기가 아니라, 작은 문장 하나에서 시작된다는 것도요. 외로움이 밀려오는 날, 그 감정을 없애려 하기보다 잠깐 그대로 두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오늘 하루, 내가 원하는 것을 딱 한 번만 먼저 말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9790831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boosuk1